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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21 <청계 양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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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15  1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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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역전(2)

 
김치로의 국전작품이 완성될 무렵 박식과 정민이 찾아왔다. 
“끝마무리를 보니 좋은 느낌이 드는군.”
박식이 말했다.
“완성 전에 형이 약점을 보완해 줘요.”
김치로는 다시 정민을 보았다.
“형수님도 전문가이니 한 말씀 해주시고요.”
전문가라는 호칭에 정민은 한마디쯤 해주고 싶었다.
“그림이 좋아 보이네요. 단지 두 작품이 같아 보이는 점만 피하면 좋겠어요. 예전에 두 작품을 한 작가의 것으로 오인받은 경험이 있어서요.”
박식은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나는 이름을 쓰고, 다른 하나는 도장만 찍어. 출품도 50명 정도 띄어서 제출하고.”
일단 사진을 찍어서 청운 선생에게 보여 평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박식이 소소하게 조언했다. 
아직 출품기간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무던한 엄마라도 딸이 밤낮으로 남자와 한방에서 작업하는 게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러 과일과 차를 준비하여 문을 두드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모에게 시키면 쓸데없는 소문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
작품사진을 들고 김치로가 박식을 대동하고 청운 선생을 찾았다.
작품에 만족한 선생은 사진 두 장을 더 찍어서 가져오라고 했다. 차기 심사위원 물망에 오른 이가 찾아오면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출품에 최선을 다한 후는 운명에 맡긴다. 
김치로가 표구사에 가서 좋은 액자로 출품해 달라고 당부하고 나오는데 화가 한 분이 출품작을 가지고 들어왔다. 자기도 국전출품을 한다며 인사를 청했다. 
이 사람은 국전에 다섯 번 낙방했는데도 꿈을 꺾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말했다. 불굴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미술계에 많음을 느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연락하기로 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박동식 어른께 출품 이야기를 소상히 올렸다.
“참 잘했다.” 
선생은 김치로가 자초지종을 시원하게 보고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익힌 사람 보는 안목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란히 국전에 출품한 박식과 김치로는 청운 선생을 방문해 산수화를 공부했다. 이때 함께 간 정민과 순님은 직접 실습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열린 귀로 들어온 이론을 들으며 두 여인은 자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여인들은 이론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림을 그릴 땐 사물을 닮으려 하지 말고 먼저 계절에 대한 배려가 필요해.” 
선생은 예를 들었다. 
봄은 포근하고 담백하게 그린다. 나목은 새싹이 움트는 녹색(綠色) 점을 가한다. 겨울의 잔재와 봄의 시작은 파릇파릇한 신록과 분홍색으로 도화지를 그린다.
여름은 우거진 숲의 형태를 생각하면서 나무의 무성함을 먹으로 나타내는데 몰골법이나 미접법으로 그린다.
가을은 맑고 깨끗하게 그리되, 아직 남아 있는 나뭇잎의 골격과 다양한 단풍색을 설채하고 전체적으로는 가을색을 표현한다.
겨울은 흰 눈을 배경으로 취하곤 하므로 흰 부분에 아무것도 칠하지 않고 남겨 놓으면서 약간의 선염으로 원근과 음양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나무나 가옥에 눈이 쌓인 만설(滿雪)을 잘 나타내는 것이 요체다.
두 제자를 훌륭한 작가로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선생은 섬세한 부분까지 이론을 펼쳐 나갔다.
“다음엔 풍수학상의 산수화를 그리도록 하겠네.”
선생은 여러 화가들의 일화도 들려주었다.
김치로는 상경하여 표구 일을 하면서 해전 김창수에게 그림을 조금 배웠으나 박식의 소개로 청운 선생을 만나 지금은 청운의 제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청운의 집을 함께 드나들었다. 
박식과 김치로는 적어도 당분간 함께할 운명인가 보다.
집으로 돌아온 김치로는 박동식 어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국전 출품작을 사진으로 찍어 청운 선생에게 보여드렸다는 김치로의 말을 듣고 어른은 기뻐했다. 
“잘했어. 선배들의 경험과 경륜은 늘 배울 게 많아.”
“박식씨와 연대해서 계속 산수화를 배우려고 합니다.”
어른은 박식을 잘 알고 있기에 연대나 협업에 대해 반대할 리가 없었다.
“순님이와 국전작품 하느라 고생했는데 같이 쉬도록 해라.”
단순히 쉬라고 했는데 김치로는 영화 구경과 고궁 구경을 떠올리며 순님과 김칫국 마시는 일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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