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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 20청계 양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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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07  13: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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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화혼식(2) 

 
 박동식 어른의 배려로 김치로의 제2 인생이 시작되었다.
 박동식 집에서 집안을 둘러보며 자신이 쓸 수 있는 공간이 어떤지 살폈다. 
 어른의 외동딸 순님의 생활이 어떤지 곁눈으로 알게 되었다.
 상류사회의 모습을 처음 본 터라 사소한 생활의 격식과 가족 간 예의의 가풍이 어떤지 조금 알아챘다. 
 사흘이 지나자 재료 구매차 순님과 인사동으로 외출할 기회가 있었다. 엄한 가정에서 자란 순님은 결혼 적령기 총각과 외출하는 것이 새장 밖으로 나온 새처럼 홀가분했다.
 그들이 표구사에 들렀을 때 우연히 박식을 만났다. 김치로는 순님에게 그를 존경하는 화가 형님으로 소개했다. 같이 식사하자는 제안에 박식은 두 사람이 오붓한 시간을 가지라고 일부러 거절했다.
 재료 구매대금은 순님이 계산했다. 사천집에서 먹은 점심까지도 그녀가 값을 치렀다. 식사 후 전통찻집에서 마신 찻값은 남자가 치르려고 했으나 이마저 순님의 지갑에서 나온 빳빳한 지폐로 치렀다.
 “이왕 쏠 바엔 기분 좋게 한 방에 쏘아야죠.”
 싱긋이 웃는 그녀가 아버지한테 혼날까 걱정하는 것은 기우다. 박동식 어른은 딸을 너무 사랑한다.
 순님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것은 아버지의 뜻이 작용했다. 회사를 이어받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류대학 출신을 데릴사위로 삼으려 했으나 김치로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재산만 빼먹으려는 헛똑똑이보다 김치로 같은 순수한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관상학에 다소 조예가 있는 박동식은 김치로의 범상치 않은 골상을 감지한 것이다. 비록 농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가지 않았지만 그림 소질에서 장래성을 보았다.
 
 인생역전
 
 박식이 국전 특선작가로 활약하는 반면, 김치로는 아직 입선작가도 아니어서 표구 일로 생계유지를 하는 정도였다. 밤에만 조금씩 그리다 보니 화가의 길은 멀었다. 이런 때 표구사에서 박동식 어른을 만난 것은 운명의 전환점이다.
  박동식은 김치로가 거짓말을 모르고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점에 더욱 신임하게 되었다. 때를 봐서 미술대학에 보낼 생각이었다. 능력을 키우고 싶었다. 예비 장인의 이런 뜻도 모르고 김치로는 국전에만 전념했다. 가을 국전에 입선만 해도 대성공이다. 
 “형님, 국전 소재 준비와 기초그림 좀 도와주십시오.”
 국전준비를 하고자 김치로는 박식에게 달라붙었다. 
 형님 아우 호칭은 이런 때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국전 소재는 박식이 한때 시도했던 것을 택했고, 기초그림은 박식이 주문하는 대로 따랐다. 형님으로부터 좋은 배움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박식의 도움으로 그는 국전작품에 전력을 쏟았다. 특히 산수화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림을 그리면 행복했다.
 순님은 김치로의 뒷바라지를 하며 그림을 함께 그렸다. 국전에 나란히 출품하려고 두 점의 화판을 만들었다. 밑그림과 구도는 박식이 직접 와서 도와주었다. 김치로를 상경하도록 부추긴 사람이 박식 자신인지라 그는 김치로를 열심히 도왔다.
 좋은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김치로는 행복했다. 남자다움과 정직성을 인정해 주는 순님이 민망할 정도로 애정 표현을 할 때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지기도 했다. 
 박동식의 집으로 들어간 김치로는 좋은 그림환경을 만났다. 
 순님과 둘이 함께하는 작업은 보람이 넘치는 일이었다. 
 하루는 작업을 같이하다가 잠시 쉬는데 순님이 색다른 제안을 했다.
 “치로씨, 금년에 국전 입선하면 내년에 미술대학에 들어가면 어때요?”
 “글쎄.”
 망설이던 김치로는 말을 이었다.
 “입학금이 상당할 텐데….” 
 “생각 있으면 아버님께 말씀드려볼게요. 미리 준비해야 하니까요.”
 “데생이나 이론 실력도 충분치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서 김치로 입에서는 더듬는 말만 나왔다.
 “일단 결심만 하세요.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길도 있고요.”
 순님은 즉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제안이라 김치로 또한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순님은 치로의 식사와 의상을 매일 정성 들여 챙겼다. 
 아버지가 출근하면 식모와 집사가 집안을 정돈한다. 성격이 조용한 어머니는 집안에 계시는지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다. 딸이 김치로라는 총각을 사랑하는 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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