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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 18청계 양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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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15  18: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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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전 소재 찾기(2)  

 
 미래지향적 이야기를 하는 선생의 안목에 놀랐다. 
다음날 경주 남산에 올라 신라시대 바위에 새긴 석불들을 보았을 때 소재의 풍성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남산 탑골 마애불상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등 여러 소재를 찾았다. 
이곳 경주에서 얻은 소재를 청운 선생에게 보여주고 작품에 맞는 소재 선택을 부탁했다. 
“불상은 보통 것보다 엄중하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소재라 신중을 기하는 게 좋을 듯하네.”
“저는 경주 탑골에서 얻은 마애불상군을 그리고 싶습니다만….”
“좋은 생각이나, 여러 불상을 그리려면 신경 쓰이니 보물 913호인 마애여래좌상이 보기 좋고 그리기도 쉬울 듯하군.”
선생의 뜻에 따라 마애여래좌상을 그리기로 했다. 
소재를 구했으니 재료 준비와 작업 착수만 남은 것이다.
 
선생에게 배운 산수화는 밤에 정민과 의논하며 국전작업을 했다. 
가끔 시내를 돌아다니며 화랑에서 다른 사람의 그림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림의 종류가 많으면서 과거 그림과 현재 그림이 어우러진 인사동은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한 사람의 그림인데도 청년기와 노년기의 작품이 다르다. 모양도 가격도 다르다. 그림의 진위 판정을 척척해 내는 곳이 인사동이다. 소장가들이 인사동을 많이 찾는 이유는 화랑 주인들이 감식에 밝고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고미술 가게와 미술재료상, 표구사가 많다. 화가들이 인사동에 오면 그림 감상은 물론이고 재료 구입이 용이하고 미술정보를 얻기 쉽다. 파리의 오르세라고나 할까. 지방에서 오는 화가들은 인사동에서 목적을 충족하고 돌아가곤 한다. 
이곳에 전국의 그림 거간꾼들이 모여든다. 
박식은 자신의 그림을 전국에 배포하는 도매상에게 주었다. 
먼저 부산의 중소 화랑에 팔아보라고 주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대구, 광주, 마산, 진주, 대전, 청주 등 전국에서 그림을 동시에 찾기 시작하면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
마포의 백모 작가의 집에는 화상들이 그림을 받기 위해 진을 친다는 소문도 있다. 
1970년대는 동양화의 황금기.
유명세가 없어도 그림만 좀 좋다고 하면 없어서 못 팔 정도의 호경기였다. 경제가 좋아지면서 가정에 그림 한 점이라도 걸어둬야 체면이 선다는 시대였으니까.
 
동부지청 송 검사를 방문한 동료들이 청사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박식의 그림에 감탄을 했다. 그때마다 송 검사는 미화 작업에 조언하고 그림을 소개했다. 
한 동료 검사는 서부지청장으로 부임하면서 지청 벽면에 걸어둘 그림을 찾고 있었다. 옆에 있던 지역 상공인이 그림 대금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상공인이 대금을 송금하자, 박식은 ‘그림을 이렇게 팔아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씁쓸했다. 
보통 그림 주문을 받고 완성하는 데 대략 10일 소요되고, 표구해서 설치하는 데는 20일가량 걸린다.
박식은 인사동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위치가 되었고, 자연히 그의 그림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분주한 중에 청운 선생 댁을 찾은 지도 보름이 넘었다. 
만난 지 오래되면 가지고 가는 선물의 격이 달라야 한다. 한우갈비와 전복을 각각 한 상자씩 샀다.
이날은 정민과 함께 평창동에 갔다. 
“오늘은 부부가 왔군.”
“짐이 두 개라 같이 왔습니다.”
선물이 많다는 은근한 자랑일 수 있고, 일부러 집사람을 인사시키러 왔다는 핑계일 수도 있다.
“같이 왔으니 잘되었군. 저녁을 먹고 가게.”
외식할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사양하지 않았다.
정민은 사모님의 부엌일을 도왔다.
방안에서는 그림공부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구도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함세.”
박식은 노트를 펴고 기록할 준비를 했다.
“구도 경영에는 취(取)함과 사(捨)함이 있고, 대소(大小) 강약(强弱)이 필요하지. 허실과 공백은 그림을 살리기도 하고,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잘 배치하고, 변(邊)과 각(角)을 잘 처리하면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지.”
선생은 한참 무언가 생각하다가 설명을 이었다.
“그림에는 주(主)와 객(客)이 있네. 주객이 전도되면 그림은 생명을 잃고 졸작이 되는 것이지. 한쪽은 모이게 하고 한쪽은 흩어지게 하는 것이 산수화를 보는 관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네.” 
오묘한 이론에 박식은 청운 선생의 가르침이 너무나 고맙고 존경스러워 최선을 다해 섬기는 제자로 남을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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