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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17청계 양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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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01  15: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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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 김치로 입성(2)

 
“나도 처음 그런 생각으로 간판점을 찾아다녔으나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어. 문제는 취직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먹고사는 공간이 있어야 해.”
“그래서 형님을 찾아온 거 아닙니까?”
정민과 의논 끝에 김치로가 살 곳을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이웃이 하나 더 생기면 서울 생활이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우선은 생활이 안정되어야만 이웃이 있고 친구가 있을 것 같았다. 
허름한 집 하나를 발견했다.
불광동 북한산 등산길 옆에 있는 판잣집이었다. 
김치로는 월세 10만 원으로 들어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방이 너무 작고 좁아서 소개해 준 것이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김치로는 인사동 표구사에 취직했다. 
낮에는 표구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그림공부를 했다. 표구사에서 일하다 보니 그림 시장의 동향을 살피며 화가들도 만나게 되었다. 
화가 한 분이 그림을 가져와 표구를 부탁했다. 그림공부를 위해 좋은 작가를 만나고 싶었는데 좋은 인연이었다.
호는 해전(海田), 이름은 김창수(金昌水)였다. 산수화를 그리는 화가로 그림이 꽤 잘 나가는 걸 알게 되었다. 50대 화가로 패기 있고 그림이 좋아 선생으로 모셔도 좋을 듯했다.
“제자로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몇 번의 만남 끝에 김치로는 용기를 내어 부탁했다.
김 화백은 망설였으나 청년이 인상 좋고 재주가 있어 보여 결국 허락했다.
박식의 화실을 찾아 이론과 실기를 배우고, 김창수를 찾아가 정통 그림을 배우는 김치로는 그림 실력이 상당히 늘었다.
박식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박식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많이 늘었어. 아주 좋아.” 
“형님에 비하면 아직 송사리지요. 아무튼 열심히 하려고 해요. 많이 가르쳐주세요.”
김치로는 두 사람의 스승을 가진 셈이다. 해전 김창수와 남은 박식이다. 두 사람으로부터 장점만 배우니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이색적인 작품이라고 칭찬했다. 
 
김치로에게 고난이 닥친 것은 서울에 온 지 5개월 만이었다.
살고 있던 판잣집에 불이 나 잿더미가 되었다. 그림 도구와 살림살이가 모두 타버렸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그는 결국 박식의 집으로 갔다. 집을 마련할 때까지 같이 있기로 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불이 난 것은 좀 이상했다.
등산길 옆 무허가로 서민들의 집이라 관청이 묵인해 주었으나 주민들의 불만이 늘 끊이지 않았다. 
밤에 사람이 있을 때 불이 나면 자칫 인명 피해가 있을 수 있어 대낮에 불을 질렀다는 주민의 의견이 나왔다. 
경찰이 등산객을 상대로 목격자 조사에 나섰다. 
한 50대 여인이 연탄화덕을 들고 나와 쓰레기장에 버리는 것을 보았다는 어떤 노인의 진술이 나왔다. 인화물질이 많은 쓰레기장은 쉽게 불이 붙고 옆집으로 번지기도 쉽다. 
인상착의를 들은 경찰은 이웃에서 용의자를 찾아냈다. 
“화덕만 갖다 놓았을 뿐 불을 낼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여성 용의자는 부인했으나 경찰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범인은 자백했고, 김치로에게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불구속 처리, 과실 방화 합의조건으로 박식의 집 근처에 전세로 한옥 단칸방을 얻어냈다. 한옥을 수리해서 여러 개의 방을 세놓아 생활하는 할머니가 주인이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김치로는 새 셋집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박식과 이웃하여 사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의 그림 코치를 받기 쉬워 마냥 신이 났다. 
박식의 그림이 한 점에 오만 원이었으나 김치로의 그림은 일만 원에 판매되었다. 그래도 그림이 돈이 된다는 사실에 김치로는 마음이 뿌듯했다. 밤낮 그림에 몰두하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김치로가 주경야독으로 그린 그림이 호평을 받고 있긴 하나 경력이 없어 노동의 대가 수준이라 생계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박식의 주선으로 혈혈단신 상경하여 표구 일을 도와주는 게 전부였다. 
다만 잘생긴 용모와 훤칠한 키 그리고 까다롭지 않은 성품으로 주위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사는 장점이 있었다.
 
국전 소재 찾기
 
국전준비를 하는 중 박식은 경주의 지인으로부터 초대전시를 열어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혼자서 판단하기 어려워 청운 선생에게 문의했다.
역시 경험자는 다른가 보다.
“전시회는 내년으로 미루고 국전에만 힘을 쏟게. 특선이 되면 전시뿐만 아니라 작품판매에도 크게 도움이 될 테니까.”
선생의 조언은 간단명료했다.
박식은 작품 소재를 찾기 위해 천년고도 경주를 찾았다. 
경주에는 초대전을 요청했던 최복식 선생이 있었다. 전시는 내년에 해드릴 것을 약속하고 그림 소재에 도움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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