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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2 청계 양태석첫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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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08  10: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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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따라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박식은 술친구인 김상철을 찾아가 술이나 한잔하자고 꼬드겼다. 
두 사람 다 고향에 가족을 두고 객지로 나와 외로운 생활을 하는 처지라 박식과 상철은 이런 술자리를 자주 만들었다. 
그들은 재주와 성격이 비슷하여 서로를 위로하며 허심탄회하게 심금을 털어놓는 막역한 친구로 매일같이 만나고 간판을 그려서 달아주는 찰떡궁합 파트너이며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이다. 
박식은 간판글씨를 쓰고 상철은 간판을 달아주는 일을 했다. 박식은 글 쓰는 솜씨가 뛰어나 개업하는 상점의 간판을 독차지할 정도였는데, 그래서인지 간판집 주인은 박식을 특별 대우했다. 
박식이 간판을 쓸 때는 자를 대지 않고 평필로 페인트를 이용해서 서예가가 현판을 쓰듯 줄줄 써내려가고, 여러 개의 간판을 단숨에 완성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신출귀몰한 능력이어서 간판을 쓸 때는 구경꾼이 몰려들 정도였다. 
 
몹시 싸늘한 오후 박식과 상철은 간판을 달아주고 주인한테서 받은 약간의 용돈으로 소주와 오징어를 사들고 박식의 하숙집으로 갔다.
하숙방에는 묘령의 여인이 와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문을 열었는지는 박식이 잘 알고 있다.
박식이 상철의 팔을 끌었다.
“인사해라. 그림을 그리는 예비 여성화가라고 할까. 평소 조금 아는 사이야.” 
“김상철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소주병을 든 채 인사하자 여인은 엉겁결에 일어섰다.
“오정민이라고 합니다.”
여인은 미술대학을 중퇴한 노처녀이다. 가정환경이 불우하여 학교를 중퇴하고 혼자서 공모전 준비를 하는 화가 지망생으로 박식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서로 도움을 주는 처지가 되었다. 
“상철씨,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정민씨도 같은 길을 택했으니 서로 도우면서 잘 지내요.”
두 사람이 인사하는 걸 보며 박식은 흡족해했다. 서로 도울 줄 아는 자질을 가진 사람들 같아 기뻤다. 
“이제 우리 모두 한편이니 서로 정보 교환하고 기술을 함께 연마하도록 노력합시다. 파이팅!”
박식이 의식적으로 목소리에 힘을 넣었다.
 
세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공모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도전(道展)에 출품하는 소재와 재료는 정민이 구하고 작품은 박식의 방에서 그리기로 했다. 
경남 도전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모전 참여자가 많지 않았다. 박식과 정민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모전 준비에 열중하면서 최소한 입선은 되겠지 하는 자만심에 차 있었다. 지난해 정민의 친구가 대학 재학시절 도전에 출품하여 무난히 입선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박식과 정민은 공모전 그림을 그렸고 상철은 구경만 하는 처지였다. 두 사람 모두 동양화를 선택하였기에 종이에 먹을 사용했다. 그림을 그릴 때 상철은 먹을 갈아주었다. 
“내가 할 일은 육체노동밖에 없군.”
자신의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 상철은 역할에 어색해하였으나 이런 일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먹을 잘 갈면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상철씨, 고마워요.”
정민이 칭찬하자 상철은 용기가 나는 듯 먹을 더 힘주어 갈았다.
정민은 대학에서 배운 이론과 실기를 박식에게 알려주었고, 박식은 자신의 특기인 데생을 정민에게 가르쳤다.
한번 보면 못 하는 것이 없는 박식의 천재성은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박식과 정민은 공모전 경험이 없어서 처음 시도하는 풋내기라는 약점이 있었으나 자신감만은 차고 넘쳤다. 그림 재주 하나로 장차 유명화가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있는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의욕만 가득 찬 무모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박식은 그림 소재로 촉석루를 정면에서 찍은 사진을 택했고, 정민은 서장대를 앞에 두고 그리기로 했다.
기초 그림은 박식이 그렸고, 색채는 정민이 그리는 분업식 협업으로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두 사람은 무경험자로서 공모전의 성격을 모른 채 실력 발휘를 하려다 보니 그림은 다소 어설프고 옹졸한 모양이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어볼 처지도 아니어서 오로지 자기들만의 실력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마무리하기 전에 경험자에게 한번 보이는 게 어떨까요?”
출품 날짜가 한 달여 남았을 때 정민은 공모전 경험이 있는 자기 선배에게 한번 보이자고 제안했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박식은 동의했다.
선배와 시간을 조율하고 작업장에 그를 초청했다.
두 사람의 그림을 본 선배는 머리를 저었다.
“공모전 그림이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상당히 상식적이며 조형적이어야 하는데 너무 사실에만 치우쳤네. 예술적 감각이 결여돼서 출품해도 낙방할 게 뻔해.”
가혹한 평가를 하면서 다시 그리라고 충고했다. 다시 그려도 시간이 있으니 열심히 해보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박식과 정민은 처음에는 실망하며 반신반의했으나 그의 충고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그리기로 했다.
선배가 좋은 종이를 선택해 주었고 구도까지 잡아주었다. 한 달 동안 그린 경험이 있어 다시 그리는 그림은 한결 쉬운 느낌이 들었다. 선배의 가르침이 천만다행이었고, 그림이 완성되자 드디어 경남 도전에 출품하게 되었다. 
 
10월 중순 도전심사 결과가 신문에 발표되었다. 
정민은 입선의 영광을 얻었고, 박식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함께 그렸는데 왜 천국과 지옥이지?”
박식과 정민은 신랑 신부처럼 마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 작품을 한 방에서 그렸고 같은 솜씨로 그렸는데 결과는 왜 판이하지?”
박식이 의아해서 선배를 통해 심사결과를 알아보았다. 
두 작품 모두 잘 그렸고 입선 후보에 올랐으나 심사위원들이 한 사람 작품으로 착각하여 하나만 올렸다고 했다. 작가의 이름을 안 쓰고 똑같아 보이는 도장만 찍어서 출품했기 때문이다. 도장의 크기가 같았고, 인육 색도 같았으며, 기법이나 솜씨가 한 사람이 그린 것처럼 보여 하나는 낙선되었다는 것이다. 
박식은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고, 다음해 다시 도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경험 부족으로 일어난 일이니 다시 준비하여 재도전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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