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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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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16  12: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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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점 주인과 주먹을 휘두른 불량배 5명은 구속되고 나머지는 불구속 입건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고, 경찰은 마을 불량배를 일망타진한 공으로 표창장을 받았다. 

 
일상으로 돌아온 박식은 주문한 간판을 달아주며 안정을 찾았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미라가 남편의 독려로 박식에게 작은 도움을 준 것은 하나의 보람이기도 했다. 
박식은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정민과 진주에 다녀오기로 했다. 
급히 충무로 오느라 진주의 지인이나 성기 집에도 알리지 않고 왔기에 미안함이 있었다. 
전태식 사장에게 여러 일을 이야기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박식이 충무에 가서 간판점을 한다고 하여 혹시 미라를 만나는 건 아닌지 걱정까지 했다.
‘이놈을 진주로 데려와야지.’
전태식은 박식을 진주로 오게 할 방도를 찾고 있었다.
진주로 오면 좋은 길목에 간판 점포를 무상으로 얻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박식으로부터 자초자종을 들은 정민이 먼저 밝은 얼굴을 했다. 
“잘되었네요. 점포 공짜로 얻고, 국전준비하고, 일거양득 아닌가요?” 
정민은 내심 한 명의 연적이 사라지는 것에 더 기뻤다.
한편 연인을 만날 수 없게 되는 박식으로선 반대의 기분이었다. 
진주에 와버리면 미라는 만나기 어렵다. 얼굴이라도 보면서 마음에 위안을 받았는데 그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망설여졌다. 
그러면서 박식은 현실로 방향을 돌리고는,
“그래야겠지?” 정민에게 말하고 말았다.
 
충무에서 점포를 정리하고 진주로 옮긴 것은 한 달 뒤였다. 
정민을 먼저 진주로 보내고, 모든 것을 정리했다.
마지막 날 미라를 만났다. 
전화번호를 모르기 때문에 시장 가는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그녀를 만났다. 부근 다방으로 갔다. 
“미라씨를 만나러 충무로 이사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진주로 돌아갑니다. 작별 인사하러 왔습니다.”
박식의 입에서 고백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제가 있는 곳을 알고 계셨군요.”
“알다마다요. 그래도 검사님 사모님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저 때문에 충무까지 오셨는데 업자의 보복도 당하시고… 박식씨, 미안해요.”
“보복당한 것은 어찌 아셨나요?”
“간판점을 찾아갔을 때 불량배들과 싸워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주민들의 말을 들었지요. 남편에게 경위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고요.”
이런 면에서 박식은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박식씨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그런 것밖에 더 있겠어요?”
“일이 잘 풀려 재수가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바보로군요. 어쨌든 고맙습니다.”
미라는 북쪽을 향한 창문을 바라보았다.
“저희는 조금 있으면 서울로 이사해요. 서울로 전보 발령이 났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의 남편 송치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하는 선배의 주선으로 그의 부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꽃피는 삼월이면 서울로 갈 거예요. 이젠 몽둥이 짓은 하지 마세요.”
두 사람은 모처럼 웃었다.
 
 
 
뿌린 씨앗들
 
박식과 정민은 동거하면서 작은 일이라도 서로 의논하는 사이가 되었다. 비록 결혼한 사이는 아니나 신혼처럼 사랑과 젊음을 불태우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긴장과 초조, 스릴의 연속인 충무 생활을 청산하고, 진주에서 새 둥지를 틀고 간판 일과 국전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전태식이 마련해 준 점포에서 간판 일로 생계를 꾸려가고 화가로서 기반을 구축해나갔다.
진주에서 안정을 찾아갈 때 가을 도전이 열렸다. 
박식은 도전 특선과 국전 입선 경력이 반영되어 도전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이때 정민은 도전에 출품하여 입선을 했다. 특선도 가능하나 남의 눈치도 봐야 하므로 입선으로 만족했다. 
박식과 정민의 동거는 열정이 넘칠 때가 있었다.
“피임약은?”
약을 강조하면서도 촘촘하게 챙기지 못해 그만 임신하고 말았다.
미술활동에 간판 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무리일진대 정민은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했다.
아기를 키울 여유는 없으나 박식과 동거의 끈을 다잡는 고리가 될 수 있어 정민은 결심을 굳혔다. 
상철의 아이는 상철의 어머니가 키우고 있었다. 정민은 가끔 만나고 오는 정도였다. 
박식의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출생 전에 생각해 봐야 했다.
 
미라가 서울로 이사하고 철쭉이 붉음을 토해낼 무렵, 박식의 국전 출품이 임박해 왔다. 
지방 미술협회 동료 5명이 출품하기로 했다. 함께 차를 대절하여 현대미술관에 출품하고 오후에 돌아오기 위해 새벽에 출발했다. 출품 협조를 위해 동료 한 명과 박식이 서울로 갔다. 박식은 서울 사정을 알아볼 참이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한 미라는 남편이 출근하면 서울의 명소를 찾아 구경하거나 지인들과 만나 외식을 하곤 했다. 
추석이 가까운 어느 날 오전 그녀는 덕수궁 석조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지?”
차에서 대형작품을 내리는 한 사람을 보았다.
박식이었다. 
한번 만나고 싶었던 차에 반가웠다. 출품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미라를 본 박식은 우연의 만남에 국전 출품을 알고 왔냐고 물었다. 
“그냥 고궁 구경하러 왔는데 이렇게 만나네요.”
미라는 ‘우연이 잦으면 필연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망원경으로 봐주는 우주인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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