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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돌고 돌아 다시… 물방울 떨어지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별세…향년 92세
김정기  |  theart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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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16  12: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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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에 작품을 하고 있는 김창열화백 사진 김창열 사이버 뮤지엄

[더아트뉴스 김정기기자]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이 1월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화백은 빛나는 물방울을 표면에 그려내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한국 대표 화가다. 동양 철학과 정신이 담긴 천자문을 캔버스에 쓰고 그리는 등 회화의 본질을 찾아 작품에 담았다.
   '물방울' 화가. 올이 굵고 성긴 마포(麻布) 위에 영롱한 물방울을 담아온 지 50여 년. 백남준, 이우환과 더불어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작가 중 한 사람이다.
  고인의 '물방울'은 이미 보편적 브랜드가 됐을 정도. 서양의 사실주의 기법으로 전통적 정서를 표현하면서, 풍경화와 정물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초현실적인 인상마저 심어준다는 평이다. 
  생전 고인은 "물방울은 회화적으로는 점“이라며 ”처음에는 앵포르멜(informel·2차대전 후 일어난 서정적 추상의 한 경향)운동에 심취했다. 스무 살 때 6.25전쟁을 맞았고 그때 중학동창이 120명이었는데 전쟁이 끝나니까 60명밖에 안 남았었다. 이렇게 죽건, 저렇게 죽건 가장 처참한 청춘이었다. 이게 초기작 '상흔(傷痕)' 시리즈가 나온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결정적인 물방울의 탄생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리 근교 마구간을 작업실이자 숙소로 쓰던 고인은 1970년 평생의 반려자가 된 부인 마르틴 질롱 씨를 만났다. 그의 평생 화업에 주축이 된 ‘물방울’이 탄생한 때도 이즈음이다. 1972년 마구간에서 물을 뿌려둔 캔버스가 계기다. 가난했던 화가는 말라붙은 유화물감을 떼어내 재활용할 요량이었다. 다음 날 아침, 물감을 뜯어내다가 캔버스 뒷면에 맺힌 물방울을 발견한 것이 물방울의 탄생으로 연결되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유화물감이 아닌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이었다. 
  서양화가들과의 차이를 찾고 있던 그에게 그것은 잃어버렸던 유년의 순수함, 향수 또는 불교의 공(空)이나 도교의 무(無)와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고 한다. 
  첫 물방울 작품은 '20개의 물방울'. 이후 방법론적 측면에서, 소재적 측면에서, 철학적 측면에서, 진화를 거듭했다.
   고인을 대표하는 작업인 ‘물방울 회화’는 그해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유럽 화단에 데뷔하면서 출품한 ‘밤의 행사’를 시작으로 물방울 소재 작품 활동을 50년 가까이 이어왔다. 
  물방울은 시대에 따라 다른 형체로 나타났다. 
  1980년대부터는 캔버스가 아닌 마대에, 1980년대 중반부터는 마대에 색과 면을 그려 넣어 동양적 정서를 살렸다. 1990년대부터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화면 전반에 배치한 ‘회귀’ 시리즈가 탄생했고, 이는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유화를 기본으로 아크릴·수채·먹으로 그렸고, 캔버스가 아니라면 신문지·모래·나무판·한지를 들였으며, 여기에 붓과 에어브러시 등등, 오로지 물방울 하나 맺히게 하는 데 동원한 도구는 차고 넘쳤다. 
 
최고가 작품은 5억 1282만원 팔린 ‘물방울’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함축한 물방울 회화은 실제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영롱한 물방울로 대중적인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줬고 한국 현대미술에 큰 획을 긋게 했다. 생전에 고인은 국립현대미술관, 드라기낭미술관, 사마모토젠조미술관, 쥬드폼므미술관, 중국국가박물관, 국립대만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회 개인전을 열었다. 그중 1976년 인연을 맺은 갤러리현대에서만 14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는데, 지난해 10월 연 ‘패스’ 전이 고인의 마지막 개인전이 됐다. 
  고인의 작품은 미술품 경매나 아트페어 등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최고가 작품은 1973년 마포에 그린 유화 ‘물방울’로 2016년 케이옥션 홍콩경매에서 5억 1282만원에 낙찰됐다. 고인의 작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독일 보훔미술관을 비롯해 국내에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이 소장하고 있다.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 배워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열여섯 살에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1948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벌어지면서 이내 학업은 중단해야 했다. 전쟁 후에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고인은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경찰관, 고교 미술교사를 거쳐 57년 한국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추상회화를 추구하는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펼쳤다. 1957년 박서보·하인두·정창섭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의 급진적인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61년 파리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출품한 뒤 대학 은사였던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4년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2000년대 변신. 설치미술도 시도
 
  또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이후 프랑스는 물론 유럽·미국, 일본 등지에서 개인전과 국제전을 가지며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추구했다. 
  90년대에 이르러 캔버스에 쓴 천자문 글씨를 배경으로 물방울을 그려내며 깊은 내공에 이르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색채와 형태의 변화를 시도하며 변신을 꾀한다. 물방울 모양의 큰 유리병에 물을 담고 천장에서 쇠줄로 매달아 늘어뜨리는 설치미술도 시도했다.  
  지난 2016년 1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백남준 작고 10주기 추모 전시'에서 친구였던 고 백남준 작가를 기리며 바이올린을 이용한 퍼포먼스 '걸음을 위한 선'을 재연하기도 했다.
  현재 김 화백의 작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등 해외 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내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김 화백은 한국과 프랑스 문화교류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이후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수상했다.
  2016년에는 제주도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지구에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미술관은 제주 서쪽 한림읍 저지(楮旨)문화예술인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박서보 화백과 중국 화가 펑정지에의 작업 공간을 비롯해 TV쇼 진품명품 양의숙 감정위원의 한옥, 제주현대미술관 등이 옹기종기 모여 ‘미술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제주도는 고인이 한국전쟁 당시 1년 6개월 정도 머물렀던 인연으로 ‘제2의 고향’으로 여긴 곳이다.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찰학교에 지원한 김 화백은 1952년부터 제주시와 애월, 함덕 등지에서 1년 6개월간 부임했던 인연으로 자신의 작품 220점을 제주에 기증하기로 했고, 제주도는 3년에 걸쳐 92억원을 들여 이곳에 미술관을 지었다. 미술관은 자녀에게 물려줄 작품까지 기증해 지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지 4990평방m(약 1509평)에 연면적은 1587평방m(약 480평) 규모다. 아키플랜의 홍재승 건축가는 김 화백과의 상의 끝에 ‘작은 신전(神展)’을 컨셉트로 잡았다고 밝혔다. 검회색 나무결 무늬가 드러나도록 벽면 콘크리트를 처리해 멀리서 보면 검정 현무암 느낌이 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연못과 분수가 있는 중정(中庭)을 중심으로 8개의 큐빅이 한자 ‘돌아올 회(回)’자 형상을 만들고 있다. 3개의 전시실과 1개의 수장고, 교육체험실, 카페테리아와 아트숍이 각 큐빅을 채우고 있는 모양새다. 중정으로 나가면 벽면을 따라 위로 올라가도록 돼 있는데, 옥상에 올라가면 다시 땅으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구조를 갖췄다. 카페테리아 앞마당은 작은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게 했다.  
  그는 오래 동안 심장부정맥을 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약을 상시복용하고 있는데 파리 몽파르나스에 일찌감치 묘자리를 봐놓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유언장은 2000년경에 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화백은 “내가 죽으면 이 그림은 어떤 미술관, 저 그림은 또 다른 미술관에 각각 기증하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파리에서 죽으면 몽파르나스에, 서울서 죽으면 어머니를 모신 양평에 묻힐 계획이었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부인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7일 오전 11시 50분에 진행됐다. 
 
·김창열은 누구
 
-1929년 평남 맹산 출생·1942년 평양 광성중 입학·1946년 월남.
-1947년 경성미술연구소, 이쾌대 미술연구소에서 그림 공부.
-1949년 서울대 미대 입학·1951년 경찰전문대학 입교.
-1955년 고교 교사자격 검정시험 합격, 서울예고 등에서 미술교사.
-1966~68년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뉴욕 아트 슈트던트리그 유학. 
-1970년 파리 국립미술학교 입학.
-1972년 프랑스 '살롱 드 메 50점 전' 첫 물방울 작품 전시.
-1973년 파리 놀 인터내셔널 첫 개인전서 물방울 작품 30점 발표. 상파울루 비엔 날레에서 명예상 수상, 국제적인 화가로 발돋음.
-2004년 파리 쥬 드 폼므 국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2005년 한국 화가로는 최초로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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