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트뉴스
연재
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 19청계 양태석
.  |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4.17  13:47:1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사찰 화혼식 

 
 이모부가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고 박식은 정민과 아들 준식(俊植)을 데리고 부산에 내려갔다. 
 이모 댁에는 고향의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이 모였다.
 아들 준식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니 박식의 기분이 좋았다. 내 아들임을 다른 사람이 확인해 주는 것이니까.
 웃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사뭇 흐뭇해했다. 아들 덕에 자신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부산에 내려온 김에 중앙동 화랑가 일대를 둘러보았다. 타워갤러리의 한쪽 모퉁이에 자신의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뿌듯함을 느꼈다. 지난달 인사동 화랑에 넘겼던 10호 산수풍경이었다. 큐레이터는 서울에서 넘길 때 가격의 10배라고 하면서 자주 팔린다고 덧붙였다. 다른 화랑에도 자신의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화가는 이럴 때 제일 행복하다.
 가족과 용두산에 올라 부산항을 내려다보았다. 서양화를 그린다면 좋을 풍경으로 보였다.
 자갈치시장에 내려와 생선회를 마음껏 즐기고 과메기를 보자 청운 선생 생각이 나서 한 포를 샀다.
 청주 안주로 좋아하신다는 걸 언젠가 들은 것 같아서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작가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모부 장례식을 마치고 상경한 지 얼마 안 돼 강영준 묵염회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흘 후 총회가 있으니 보직 하나를 맡으라고 했다. 감투는 자신의 머리에 잘 안 맞는다고 사양했지만 강 회장은 막무가내였다. 회원들의 연령이 높아 실무를 맡을 총무가 필요하다고 했다.
  회원과의 친분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고 경험이 적어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럼 경험을 쌓는 의미에서 부총무제를 신설하겠네. 그걸 맡게.” 
 박식의 부총무 임명을 위해 여론에 들어갔다.
 회원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열심히 일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박식과 정민은 비록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으나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를 호적에 올렸다. 기회가 되면 조촐한 혼인식을 올릴 작정이다.
 경제적 여유와 마음의 안정이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어느 날 박식은 사찰의 스님과 의논을 하였다. 
 “결혼이란 인간지대사이니 크나 작으나 형식을 취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스님의 조언에 “그럼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박식이 물었다.
 “양가 부모님 모시고 절에서 간단하게 화혼식을 해도 돼.”
 절에서 결혼하는 것을 화혼이라 하는가 보다.
 스님 주례로 식을 올렸다. 
 1979년 가을, 천신만고 끝에 국전 특선의 영광도 얻었다.
 박식에게는 가화만사성에 입신양명의 양수겸장 복이 묶음으로 들어온 것이다.
 작가로서의 입지가 탄탄해져 가니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와는 달리 송 검사의 신변에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권 교체기를 맞아 송 검사는 서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수원지청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전 정권의 수사 비리가 포착되어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그동안 박식은 미라를 통해 송 검사 덕을 많이 보았기에 그가 불이익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박식은 송 검사와의 문제를 청운 선생에게 조심스럽게 알렸다. 
 “검찰 수뇌부에 친한 사람이 있으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네.”
 빛이 보이는 대안이 선생에게서 쉽게 나올 줄은 몰랐다.
 송 검사에게 은혜를 갚을 좋은 기회가 될지 몰랐다.
 봐주는 힘이 잘 먹혔던 시절이라 송 검사는 조사에서 혐의가 풀렸다.
 미라와 송 검사는 박식의 노력에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치로가 박식의 도움을 덜 받게 된 계기가 마련되었다.
어느 날 표구를 시키기 위해 찾아온 손님 한 분이 김치로의 그림을 보고 호감을 느끼며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물었다.
 생계를 위해 어렵게 무명화가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김치로의 용모와 그림 솜씨에 호감을 느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집 약도를 주면서 한번 찾아오라고 말한, 풍채 좋고 부티 나는 그 사람은 성북동 중간쯤 길상사 입구 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큰 대문을 거쳐 들어간 곳은 넓은 거실이었다. 벽면에는 유명화가의 그림으로 꽉 차 있었다. 이렇게 큰 한옥은 처음 봤다. 김치로는 정신이 얼떨떨했다.
  나이 60대의 박동식 어른은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하면서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었다.
  박식은 김치로가 성북동 박동식 댁으로 들어가게 된 사정을 청운 선생에게 전했다. 선생은 박동식과 잘 아는 사이로 그가 훌륭한 작가임을 강조했다.   
                               
< 저작권자 © 더아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더아트뉴스 서울시 금천구 시흥대로 73길 11 B6호  |  대표전화 : 02-803-9070  |  팩스 :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민주
등록일 : 2020-11-23  |  발행일 : 2020-12-17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 53391   |  발행인 : 김준일   |  편집인 : 김정기
Copyright ⓒ 2020 더아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theart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