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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 3 청계 양태석여자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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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16  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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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반복되는 간판 글쓰기에 지치고 권태가 붙어 박식은 새로운 구상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때 정민은 도전 입선이라는 선물로 작가로서의 체면을 세워 쉬고 있을 때 박식은 패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다시 준비하며 그리기 시작했다. 
정민은 같은 방에서 그린 그림이라도 자기 것이 입선된 데 대하여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지방 화단의 미술단체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박식은 간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간판집 주인은 팔팔 뛰었고 월급을 재조정하겠으니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까지 했다. 박식이가 그만두면 손님의 반은 줄 것이고, 연세가 높은 주인의 글씨가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업무처리가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자 한사코 박식을 잡아두려는 것이었다.
박식은 조건을 제시했다. 
“사장님, 하루에 두 시간씩은 간판 일 하지 않고 저의 그림작업에 몰두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시면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인은 턱에 손을 갖다 대고 딜레마에 빠진 듯 한참 생각했다.
“좋다. 쉬운 것은 조수 김치로에게 맡기기로 하자.”
 
그날부터 박식은 틈틈이 도전작품에 매달렸다.
어느 때부턴가 정민과의 관계가 조금씩 소원해지면서 그녀와 만나는 빈도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상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외박을 하고 이튿날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핑계는 많았다. 고향에서 친구가 와서 다른 곳에서 자고 왔다느니, 몸이 아프다느니 별의별 이유로 박식과 하숙집에 함께 있는 것은 사흘에 한 번 정도였다. 
‘어디 보자. 뭔가 있을 거야.’
박식은 상철의 행동이 수상해서 하루는 뒤따라가 보았다. 
상철은 일을 마치자마자 바쁜 걸음으로 제일극장 골목 쪽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정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것들이…’
보이는 광경이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보통사이가 아닌 게 틀림없다. 
둘이 연애를 선언했다면 박식 자신은 충분히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신을 따돌리고 몰래 만나는 것일까? 괘씸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박식은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그동안 정민이 자기를 좋아하는 눈치였고, 그림을 그릴 때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미소 짓곤 했는데, 상철과 사이가 좋아졌다니? 
그날 밤도 상철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때 박식은 생각에 잠겼다.
친구와의 우정을 생각해서 직접 말하지 않고 미술 재료점 주인을 통해서 정민을 만나자고 통보했다. 
통보한 지 사흘 만에 정민은 박식의 화실로 찾아왔다. 그때 상철은 현장에 나가고 화실에는 없었다.
“정민씨, 상철과의 관계를 다 알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봐요.” 
남자가 던지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여자는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미안합니다. 박식씨.”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태산같이 믿고 좋아했는데, 나를 배신하고 상철과 사귀게 된 것에 대해 설명해 봐요.”
대답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여자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도 박식씨를 좋아했어요. 같이 그림을 그리면 평생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난 봄 그림을 그리다가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상철씨가 갑자기 덮쳐 나는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어요. 그 후 우리는 아무런 대책 없이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요. 상철씨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말로 안심시키고 결국 깊은 관계로 발전했어요.”
그러고는 한참동안 숨을 멈췄다가,
“미안해요.”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박식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상철은 비록 객지에서 만난 친구지만 서로 믿는 사이고, 그림 파트너로 사귄 정민은 평생을 같이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존중하며 대했는데, 두 사람의 배신에 실망하고 마음이 아파 박식은 그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용서하고 참으려 해도 울분이 치솟아 견디기 어려웠고, 결국은 상철을 내보내고 혼자 있기로 결심했다. 
상철은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방을 얻어 혼자 독립하기에는 벅차고 정민과 같은 방을 쓰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거가 시작되었지만, 두 사람은 생계로 고민이 많았다. 
정민은 시골의 부모에게 취직했다는 말로 사고를 치고 말았다. 
 
박식은 도전 준비에 열중했고 간판을 쓰는 데도 열중했다. 오히려 혼자 연구하고 노력하여 가을 도전에 출품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작품이니 입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간판 쓰기에 여념이 없을 때 미술 재료점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네 작품이 특선으로 뽑혔다네.”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지방신문에 대서특필로 박식의 특선 소식이 전해지자 먼저 간판집 주인이 좋아했다. 점원의 특선 소문으로 간판집이 대박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재료점 주인이 좋아했다. 자기 집 재료를 써서 특선이 되었다는 자랑거리가 생겼다. 
마지막은 지난해에 그림 코치를 해준 김 선생이 자기 공로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 외에 구도나 색채 등 틈틈이 잔소리를 한 친구들도 모두 자기 공이라며 나섰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려낸 작가는 공이 없는 쭉정이가 돼버렸다. 그러나 모든 영광은 작가의 것이고 그로 인해 박식은 특선작가로 인정받고 본격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민이 도전에 출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림의 수준이 지난해 출품작보다 좋았는데 낙방했으니 그 원인이 궁금했다. 
작가는 끝끝내 긴장하고 노력해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인데, 그녀는 지난해 입선으로 다소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박식처럼 불철주야 노력하지도 않았다. 상철과 연애하느라 다소 게을리한 점이 있었다. 박식과 함께 그릴 때는 서로 약점을 잡아주었다. 각자 따로 작업을 하면서 그런 약점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원인이기도 했다.
“묵창(墨創)회에 입회해 주십시오.”
박식이 도전에 특선을 하자 여러 미술단체에서 영입하려고 교섭이 들어왔다. 그는 입회하기로 했다. 
묵창(墨創)회는 역사가 오래고 수준 높은 단체였다. 선배들과 교류하고 경험담을 들을 수 있고, 미술활동에 큰 도움이 되는 곳이라는 선배의 조언도 있었다. 
묵창회에는 도내 원로화가들과 국전작가들이 많았다. 매년 회원전시회를 함으로써 여러 사람과 작품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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