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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살 현역’ 김병기 화백 별세화가 이중섭 · 시인 이상과 우정나눈 근현대예술 100년사 증언 쉰살에 미국 건너가 50년 만에 돌아와 추상회화 화폭에 담아
김진  |  theart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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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16  18: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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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에 출품한 고 김병기 화백의 2편 연작 가운데 ‘저항-서백호’. 자료: 대한민국예술원
 
106살 현역 화가가  떠났다. 
 20세기와 21세기를 화폭과 인생에 함께 그렸던 김병기 화백이 작고 했다. 향년 106세. 
  <황소>를 그린 국민화가 이중섭과 리얼리즘 회화의 거장 이쾌대, 푸른빛 점화의 거장 김환기 등과 친구 사이로 동고동락했던 그다.
  국내 최고령 작가이자 지난 세기 한국 근현대사의 유일한 산증인으로 남았던 그가 3월1일 오후 9시30분 경기도 장흥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1950~60년대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다. 
  서울대 미대 교수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내며 해방 이후 미술계의 제도적 기반을 다진 교육가·행정가로도 업적을 남겼다. 
  별세하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한·중·일 화단 통틀어 100살 넘은 현역작가였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예술 교류사의 증인이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부친은 1917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해 고희동, 김관호와 더불어 국내 양화 화단의 기틀을 놓은 선구자이자 고미술품 수집가로 유명했던 김찬영(1889~1960)이었다.
  유년시절 그는 평양 집 안에 널린 부친의 화집과 미술잡지, 화구, 습작한 그림들을 보면서 인상파 등의 서구 문예사조에 눈 떴다. 
  화가 이중섭은 평양 종로보통학교 같은 반 동창으로 서로 집을 오가면서 함께 화가의 꿈을 키웠다. 열여섯살에 처음 어머니가 사준 화구를 들고 그림을 그린 그는 부친을 이어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1933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유학 시절 화집을 같이 보고 즐겨 토론하는 사이였던 이중섭, 김환기와의 교분은 1939년 귀국 뒤에도 이어져 성북동 김환기의 집에서 수시로 모여 의기투합하며 조선 화단의 미래를 구상했다.
  월북화가 이쾌대·문학수 등과도 만나면서 조선 화단의 정비와 개편을 위해 진력했다. 고향 평양에서 문화예술협회를 꾸렸다가 이후 북한 정권 주도로 생긴 조선문화예술총동맹 서기장을 맡았다. 평양시군중대회에 모습을 처음 드러내기에 앞서 청년 김일성이 그를 불러 초상화를 ‘’청탁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선전미술을 채근하는 북한 정권의 압박에 1947년 월남해 국방부 한국문화연구소에서 반공선전활동을 하다 1950년 초 ‘50년미술협회’를 결성해 좌우작가 합작운동도 벌였다. 한국전쟁 발발 뒤엔 피난을 못 가고 인민군 치하 서울에서 의용군으로 끌려갈 뻔하다 탈출하는 등 생사를 넘나드는 곡절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51년 30대의 김 화백은 피난 수도 부산에서 종군화가단 부단장으로 활동도 활동했다. 부산항 부두에서 방황하던 이중섭 가족을 발견해 거처를 알선해주고 종군화가단에 가입시켜 생계를 잇게 해줬다.
   당시 거장 피카소가 미군의 양민학살을 고발한 대작 <조선의 학살>(1951)을 그려 논란을 일으키자 이 작품이 전쟁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피카소와 결별을 선언하는 편지 낭독회를 열어 일약 유명세를 탔다. 
  박서보, 김창렬, 정창섭 같은 추상미술 원로작가들이 1950년대 청년시절 ‘반국전’을 표방하면서 전위미술 운동을 벌일 때는 배후의 지원자 구실을 맡았던 이도 김 화백이었다고 한다. 
서울대 미대 교수에 이어 서울예고 설립을 주도해 미술과장을 지낸 그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으로 일하다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작품에만 전념하겠다”면서 미국에 남았다.
그 뒤 20년간 미국 동부에서 은둔하면서 형상성이 녹아든 추상회화를 갈고 닦았던 김 화백은 1986년 윤범모 평론가의 기획으로 첫 귀국전을 열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김병기:감각의 분할>은 작가를 국내 화단에 온전히 복귀하게 한 전기가 됐다. 
  뒤이어 2016년 <100세전>에 이어 2019년에도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해에도 신작을 출품한 그는 최근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엔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연말 열린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에도 출품해 코로나 감염병에 대한 저항의지를 표현한 추상회화 신작을 발표했다.
고인은 생전 <한겨레>와 한 인터뷰를 통해 인생의 첫 절반은 남북한에서, 나머지 절반은 미국에서 갈고닦은 자기 화풍을 ‘추상성을 통과한 뒤에 나온 형상성 ’이라고 함축했다.  발인은 4일 낮 12시였으며 경기도 화성 함백산추모공원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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