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가의 박식(2)

 청운 선생 사사

호 남은 박식

 1. 1943년 남해 출생

2. 청운 선생 사사

3. 경남 도전 특선

4. 국전 입선

5. 진주 창묵회 회원

6. 묵창회원전 출품

7. 충무 남산간판 대표

8. 묵염회 회원

9. D화랑 초대전

10. 남은(南恩) 동양화 연구실 운영

 박식의 경력은 초라하지만 도전 특선과 국전 입선 경력이 있으므로 구입자에게  매력적이기도 했다.

  전시회 준비가 끝나자 박식은 미라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서울에 알 만한 사람 있으면 홍보 좀 해주세요.” 

  미라는 남편에게 도움을 당부했다.

  송 검사는 박식이 작은처남 성기의 미술선생인데다 이미 구면이라 도와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고향 사람에게도 연락이 갔다.

  송 검사는 동료 검사들에게 작품 감상하고 구입해 달라는 전화를 해서 여러 검사들에게 알렸다. 덕분인지 업체에서 화환이 오고 화랑 주인도 첫 전시라 적극 협조했다.

  오후 6시 전시회를 오픈했다.

  검사 3명, 변호사 2명, 묵염회원 다수가 참석했다.

 그림 10점이 매매된 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D화랑 주인 심태식이 인사말을 했다.

  “박식 화백은 비록 연륜은 짧으나 재주가 출중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작가입니다. 작품이 신선하고 전망이 밝아 많이 사두시면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걸작의 가보가 되고 또 구매자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럼 협조 부탁해도 되겠지요?”

  참석자가 웃는 중에 박식이 주인공으로서 인사말을 할 차례였다.

  “서울 거리가 아직 미숙한데 심태식 사장님께서 많이 지도해 주시고 전시회까지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할 분이 많지만 한 분은 먼저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평소에 신세를 많이 져온 분인데, 송치구 검사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송 검사는 겸연쩍어했다.

  박식이 검사와 친분이 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 셈이다.

  작은 전시회라도 누가 참석하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지는 법이다.

  검사와 변호사, 화랑 사장의 참석은 박식의 체면을 빳빳하게 다리미질해 주었다. 미라의 참석으로 박석의 기분은 비단에 꽃을 얹어 놓은 격이었다.

  “화가는 이런 맛으로 사는가 봐요.”

  미라의 코멘트는 박식에게 기쁨의 풍선을 달아주었다.

  전시회 수금이 쏠쏠했다.

  화랑과의 4대6 배분은 일 년 생존을 담보했다.

 예술을 하다 보면 ‘금강산도 식후경’의 뜻을 깨닫게 된다고 하더니, 이런 여건에서 명작이 탄생하는가 보다.

  박식은 작가생활 시작 후 첫 전시의 성공에 자신감이 붙었다. 자신감은 성공을 위한 근육이다. 양보와 겸양은 혈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순수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진주 시절의 친구 상철 생각이 난 것은 지금 자신의 행복이 너무 커서 먼저 간 자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몫을 살아달라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박식은 상철과 그의 죽은 아들이 눈에 선했다. 그래서 정민을 더 알뜰히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단단해졌다.

  박식은 지금까지 주변에서 일어난 나쁜 일들이 이기주의의 결과이지 운명이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철저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만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경험이 이를 증명해 왔다. 재산도 건강도 운명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스스로 파이팅을 하며 운명에 도전하는 포즈도 취해 봤다.

  전시회가 끝나자마자 박식은 가족을 데리고 고향 남해로 갈 채비를 했다.

  가족이란 정민과 준식을 말한다. 보잘것없던 박식이 이제 쓸 만한 물건이 되었다는 것을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고향 방문

  남해로 가는 길에 진주에 들렀다.

  친구들을 불러 함께 옛날 간판점을 방문했다. 주인은 인사를 받고 진주에 퍼진 박식의 출세 소식을 자기 일처럼 전했다.

  이런 이야기 듣고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사동에서 그림이 잘 팔린다면 미래는 이미 서광이 들어선 거와 다름없다.

  남해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의 버선 한 짝이 뒤에 빠진 것을 보았다. 아들 가족을 본 어머니의 기쁨이 버선 한 짝을 챙기지 못하게 한 것이다.

  부모님이 많이 달라졌다.

  아들은 본 척 만 척하고 손주에게만 빠져버렸다.

  며느리에게 눈길을 돌린 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왜 남의 집 귀한 자식을 과부가 차지했느냐?”

  시어머니가 정민에게 노골적으로 말했을 때 정민은 당황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진정되자,

  “그저 미안합니다, 어머니.”

  부드러운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박식의 관망 자세는 이럴 때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마루에 걸터앉은 채 어머니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려 했다. 정민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손자라는 핏줄이 어색한 장면을 풀어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아기가 갑자기 오줌을 쌌다. 안고 있던 할머니의 손에 흘렀다.

  “대장부답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곧 손자의 재롱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과부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다.

  저녁을 먹고 부모님이 손자를 보는 동안 박식과 정민은 작은방에서 뭔가 심각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해까지 왔는데 그냥 서울로 갈 수 있어?”

  박식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난 면목이 없어 못 가겠단 말이에요.”

  진주 친정에 가지 않겠다는 정민을 설득하는 박식은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