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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혼' 지켜온 재일동포 1세 오병학 화백 별세
민주  |  theart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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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20  14: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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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학 화백의 '탈춤'.<일부>
일제 식민지 시절의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삶의 무대를 옮겼지만 '조선인의 혼'을 평생 지켜온 재일동포 1세 화가로 불린 오병학 옹이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오 화백은 10월6일 낮 12시 10분께 폐렴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 중이던 가와사키(川崎)시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고인은 생전에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인전을 열기를 소망했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1924년 평양 태생인 고인은 초·중학교를 다닌 뒤 해방 전인 1942년 화가를 꿈꾸며 일본으로 유학했다. 
  도쿄의 회화연구소 등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일본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1946년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에 입학했다가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며 2년 만에 자퇴하고서 미술관을 순례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모색했다.
  세잔을 동경한 그는 독학으로 회화를 익혀 풍경과 정물 외에 한민족의 전통 백자와 가면(탈) 등을 주로 그렸다.
  오병학화집 간행위원회는 2001년 그의 초기작부터 망라한 '오병학 화집'을 출간했다.
  2003년에는 그의 누드 그림에 반했다는 마에다 겐지 감독이 다큐멘터리 '오병학'을 제작했고, KBS가 이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한국 내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6년 9월 6일 서울 학고재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개막식에서 작품을 배경으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오병학 화백. [연합뉴스 자료사진]
  1968년 도쿄를 시작으로 개인전을 연 고인은 2006년에는 남쪽 고국에서의 첫 나들이 전시회를 서울 인사동 학고재에서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전시회에는 백자 달항아리 그림 등 50여 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남북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지론을 펴온 고인은 계간지 '마당'을 만들어 남북 화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자신이 작품인 '꿈의 기차표' 등을 팔아 경의선 복원 사업을 지원하는 일본 시민단체에 3천만엔이 넘는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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