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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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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31  12: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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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의 비밀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는 1988 입춘이 살포시 지난 무렵, 송치구 검사는 대검 중수부의 강력계장으로 승진했다.

지방출신 검사로서는 막강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여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지방 향우회 모임에서 내빈소개를 받는가 하면 일부러 인사를 다니려는 사람도 많았다.

지방에서 사법고시 출신은 결혼 적령기라면 부잣집 사윗감 일순위요, 은퇴 후라면 전관예우 변호사의 위세를 부릴 있다.

검사는 사고를 이겨내고 신작로 같은 인생을 살면서 승승장구했다.

살이 남자아이는 가문의 보배다.

그런데도 미라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태어난 옥동자가 아빠 검사를 닮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미라만이 아는 비밀로 아이가 실수로 태어났음을 눈치챘다.

비밀이 자신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박식은 국전준비를 위해 청운 선생과 상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선생님, 저의 지상목표는 국전 특선입니다.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요?

“우선 소재를 잡고 좋은 종이를 구하여 구도를 잡아 심혈을 기울여 보게. 두어 정도면 충분하겠네.

박식은 출품작 연구에 돌입했다.

낮에는 고궁을 다니며 소재 잡기에 바빴고, 밤에는 정민과 작업 연구에 몰두했다.

소재를 위해 창경궁에 들렀다.

통명전(通明殿) 뒤뜰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통명전 지붕을 찍었다.

청운 선생에게 보였을 신선하고 고전적이어서 국전작품으로 전통가옥의 문화적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킨 공이 돋보인다고 평하기도 했다.

 

박식은 국전 출품작을 위해 정민과 협작(協作) 들어갔다.

선묵(線墨) 골격(骨格) 박식이 우세하지만 색을 쓰는 것은 정민이 잘하는 편이다. 두어 여유를 가지고 여러 그림을 그려볼까 마음먹었다.

골방에서 작품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예술성과 현장감 있는 작품을 천천히 준비하는 것은 즐겁기도 했다.

정민과 동거하는 관계지만 천생연분의 부부처럼 같은 공간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행복이 이어졌다.

가끔 작품 주문이 들어오면 생활에 여유도 생겼다.

동년배의 추격을 따돌릴 만큼 박식에겐 천부적인 그림 재주가 있었다. 인사동 화랑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도 재주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표구사에서 표구하는 그림을 보고 사겠다는 사람이 생겼다. 수요가 있으면 값은 올라가고, 오른 값은 동거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여기에 운은 실력을 따라오는지 모르겠다.

D화랑 주인 심태식을 만나고 그의 소개로 청운 선생을 만난 것은 국보급 운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산비탈 작은 가옥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지만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행운이 따랐다. 모아두었던 저금 덕분에 불광동에 서른 아파트를 전세로 들었다. 아이가 마음대로 뛰놀 있고, 안방과 그림 방을 따로 있어 좋았다.

불광동 아파트로 이사 부자가 부럽지 않았다.

우선 인사동으로 가는 교통이 편리해서 좋았다.

국전에 출품한 작품이 낙선했다.

채점방식의 변경이 박식에게 불운을 안겼다. 행운의 끝일까.

청운 선생이 국전심사위원에게 알아본 결과 금년 심사방법이 예년과 달랐다고 한다. 10 만점은 반으로 깎아 5점으로 하는 심사제가 화근이 되어 오히려 1 차로 낙선되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명이 10점을 주었던 것이다. 제도는 다음해부터 폐지되었다.

발표해버린 것은 일사부재리라 번복이 불가능하다. 동안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허사로 돌아갔으나 하나의 경험으로 생각하고 다음 출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인사동의 유명 화랑에서 초대전 요청이 들어왔다. 국전 소식이 소문이 났던가 보다. 다음 국전까지 여유가 있어 한번 해보기로 했다.

크고 작은 작품 30 점을 준비하는 봄이 되었다.

일요일 정민과 아들 준식을 데리고 덕수궁 현대미술관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미술관에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일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사람 틈에 검사와 미라가 아이를 데리고 구경나온 것이다.

미술관 앞뜰에서 부부는 마주쳤다.

미라는 남편에게 박식을 소개하면서 친정 동생의 그림지도를 해준 분이라고 덧붙였다. 충무에서 간판 관계로 깡패와 싸워 말썽을 일으킨 사람으로는 검사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박식은 정민을 아이 엄마로 소개했다.

미술관은 우연의 만남을 제공하는 장소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딘가 많이 닮았다?

미라는 자기 아이와 박식의 아이를 번갈아 보며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형제를 데리고 나온 기분이었다.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검사가 눈치챌 없다. 물론 박식도 자기 아이라고 생각할 없다. 비밀은 미라 혼자 감당해야 하는 문제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민이 박식에게 농담을 걸었다.

“당신은 좋았겠다.

“왜?

“옛 애인도 만나고 든든한 검사 백도 생기고.

계속 대화를 주고받으면 싸울 같았다.

 

화랑가의 박식       

 초대전 전시 준비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D화랑 주인 심태식이 박식을 미술단체 묵염회 회장에게 소개했다. 회장의 이름은 강영준이었다.

소개의 뜻은 박식의 경력을 화랑가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작품 판매경험이 많은 심태식은 작가의 이력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강 회장님, 좋은 인연이 될지 모르니 박식씨를 묵염회원으로 꽂아주십시오.

절친한 사람처럼 ‘꽂아’라는 말을 쓰는 대화가 여유만만했다.

“묵염회원은 국전 입선작가 이상에게만 자격을 주고 있지요.

회장의 자부심은 벌써 말투에서 넘쳐났다.

“마침 잘됐네요. 박식씨가 도전 특선과 국전 입선을 했으니까요.

묵염회의 임시총회에서 박식은 회원으로 승인되었다.

전시작품의 작가 소개 인쇄물의 경력란에 이렇게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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