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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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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04  11: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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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입성(2)

 

 박식은 다른 대책을 세워야 했다.

진주 살림을 이곳으로 옮기고 큰길가에 간판점을 얻었다.

여러 간판점을 돌면서 간판 유행을 보니 페인트로 쓰는 함석간판은 줄고 아크릴 간판이 대세였다.

난감한 일이었다.

배운 것이 페인트 간판이라 생소한 아크릴 간판은 기술 부족으로 포기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했다. 자신의 기술이 먹히는 충무와 달리 첨단을 달리는 서울은 어딘가 달랐다.

간판점을 찾아갔다.

“무보수로 기술을 배우겠습니다.

무보수에도 그들은 된다고 했다.

실망하여 호떡장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호떡집을 찾았다.

호떡을 먹으면서 주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가능한 방법이 있을까요?

주인은 손님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장소 구하기도 어려워요.

권리금에다 세금을 떼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길거리 호떡장사도 납세의무를 다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박식은 전후사정을 설명하며 정민과 밤새 의논했다. 정민은 국전 욕심 때문에 사전조사도 없이 상경한 자체가 잘못이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정민의 제안으로 중계동에 사는 그녀의 사촌 언니를 찾아갔다.

구파발과 중계동은 너무 멀어 같은 서울이 아닌 같았다.

전화가 없었으니 주소만 들고 찾아갔다.

삼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장사가 아닌 작은 떡공장을 차리고 삼거리에 자판을 내고 소도매하는, 지역에서는 제법 알려진 떡집이었다.

기술을 알려줄 테니 불광동이나 구파발에서 한번 해보라고 했다. 만약 장사가 어려우면 취직해도 좋다고 했다. 별로 기술이 없는 터라 취직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인생이란 허송세월을 마냥 허락하지는 않는가 보다.

인사동 전시장과 화랑을 찾아다녔다. 화랑에서 동양화를 보았는데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를 사고 그림을 그려서 다시 찾아갔다.

“저의 그림을 보시고 팔아주십시오.

그림을 보자 화랑 주인은 질문부터 했다.

“국전에 입선이라도 했습니까?

“예, 입선 했습니다.

“그러면 10호를 점만 그려서 가져와 보세요.

이때부터 화랑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그림을 보고 머리에 새겼다. 돌아와서 정민과 연구하며 열심히 그렸다.

닷새 동안 그려서 화랑에 가져갔다.

그림을 주인은 외상으로 주면 액자를 만들어 팔아보고 주문하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집에 와서 불철주야 그렸다. 지방에서 그릴 때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했다.

주인의 소개로 최근 팔리는 화가 청운 변영훈 선생 댁을 찾아갔다.

청운 선생은 처음 보는 청년인데도 반갑게 맞이했다.

“어디서 왔나요?

“지방 초보 작가입니다. 선생님께 그림을 배우고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제자로 받아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주에서 간판 일을 하다가 그림 전시장에 가본 화가의 꿈을 키웠고, 열심히 하다 보니 도전 특선과 국전 입선을 했다는 말도 했다. 상경하여 그림 일을 하다가 화랑에서 청운 선생의 그림을 보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박식의 말을 들은 노화백은 조언을 빠뜨리지 않았다.

“어려움이 많겠군. 서울 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각오가 필요할 거네.

시골에서 상경하여 자신도 어려움이 많았다며 공감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배려가 고마웠고, 공부하며 옆에서 보기만 해도 도움이 되었다. 화본을 그려주면서 선치고, 쓰고, 운무, 그리고 구도 잡는 방법 등의 설명을 들었는데, 번만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화가수업이었다.

배움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그림도 만족스러웠다.

배운 대로 5점을 그려 화랑으로 가져갔다. 짧은 시간에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주인은 칭찬하면서 그림을 구입해 주었다. 구세주를 만난 듯했다.

그림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생전 처음 깨달았다. 돈이 생겼으니 대가들의 미술책을 사고 도구를 준비했다.

점점 그림이 좋아지자 화랑에서 독점하려고 전속 화가를 제안했다. 아내와 의논해 봐야 한다며 집으로 왔다.

정민의 생각은 달랐다.

“한번 계약을 하면 매이게 되니 생각해 봐요.

화랑에 매이면 다른 좋은 거래처를 놓칠 있다는 정민의 생각에 따라 전속계약은 연기하기로 했다.

약간의 선물을 들고 평창동 청운 선생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간 있었던 일을 전했다.

전속계약 이야기를 바로 꺼내기가 어려워 예술에 대한 이론이 화두로 등장했다.

“산수화 그리기는 유선무묵(有線無墨) 되어도 되고, 무묵유선(無墨有線) 되어도 되네. 그림에 선만 있고 묵이 없으면 그림이 삭막하고, 먹만 있고 선이 없으면 그림이 무겁지.

선생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림에는 음양오행이 있고, 산에도 오성 산수가 있지.

박식이 명심하겠다고 하자 이야기는 이어졌다.

“종이에 앞과 뒤가 있듯 먹에도 7색이 있고 진묵과 담묵으로 구분한다네.

먹이 들어가야 색을 중화시키고 무게가 생기는 법이라고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가르침이 있었다.

청운은 덕망 있고 실력이 탄탄하여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화단의 어른이면서 제자가 많은 편이었다.

 

일주일 연습해서 그린 그림을 들고 다시 청운 선생 댁을 찾았을 선생은 제자 박식이 영민하여 마음이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식이 그려온 그림을 펴보였다.

“그림이 점점 안정되어 가는구나. 이제 설채를 잘하면 명품이 되겠네.

선생은 진심을 담아 그림 하나하나 평을 했다.

“그림도 계절이 있다네. 계절이 분명하지 않은 같으니 춘하추동 계절의 색에 유념하게.

“고맙습니다. 선생님.

달쯤 선생을 뵈었을 다른 화제가 등장했다.

“오늘은 자네 호를 하나 지어줄까 하는데.

박식은 고맙기도 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아직 어린데 호를 써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작가라면 호가 있어야지. 자네 고향이 남해라고 했으니 ‘남’자를 하나 따고, 서울 은평구에 사니 ‘은’자를 따면 되겠군. 그럼 남은(南恩) 어때? 남쪽에서 은혜를 입고 왔으니 안성맞춤이네.

그날로 그는 ‘남은’ 박식이 되었다.

서울에서 박식은 본격적인 화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사동 화랑에서 남은의 그림이 주목받자 가끔 주문도 있었다.

한편 정민은 사내다운 옥동자를 출산했다.

박식이 서울에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면서 귀여운 아들까지 얻었으니 금상첨화는 이때 적합한 말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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