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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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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20  1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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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을 다하는 가정교사를 기특하게 여긴 전태식 사장은 선심을 썼다.

“월급은 30만 원 더 올려주리다.”
사업가의 기질은 이런 데서 나오나 보다. 단번에 결정하는 판단력이 반짝였다. 이제 간판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지금껏 정든 간판점을 그만두기가 미안하여 일을 계속하면서 매일 성기의 그림공부 지도에 최선을 다했다. 성기의 실력이 좋아져 하기 실기대회에서 전교 1등을 했다. 덕분에 상여금으로 30만 원을 받았다. 그렇다고 사윗감 굳히기에 들어가는 호의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경제성장기인 70년대에 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특히 조형예술은 음향예술 다음으로 인기가 높았다. 
화가들은 가는 곳마다 우대를 받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그림의 매매가 활발해져 화가의 생활이 윤택해지기 시작했다. 
박식은 아직 화가 지망생이지 유명화가 반열에 들지 않았다. 자연히 생활비는 월급으로 조달해야만 했다. 
 
끝이 되어야 끝인 줄 안다고 했던가.
박식은 미라를 일 년여 동안 사귀면서 정이 들 대로 들었으나 엄격한 가정이라 관계의 틈을 주지 않았다. 박식과 미라는 다정한 오누이 사이처럼 얼굴만 마주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식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미라가 어느 검사와 혼담이 오간다는 것이었다. 
전태식은 진주에서 가장 큰 건설업을 하고 있기에 검사 사위가 필요했고, 중매쟁이의 솔깃한 꼬임에 박식을 버리고 검사를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업가다운 이익 우선의 발상이었다. 
박식은 아무런 힘이 없었고 미라도 속수무책이었다. 양가의 정략적인 결혼이라 외형적으로 부러운 혼사지만 미라는 내키지 않았던가 보다. 
설상가상으로 박식은 일 년 동안 준비한 국전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침울한 기분이었다. 하늘같이 믿었던 미라마저 검사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박식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황야가 따로 없었다.
박식은 간판이고 국전이고 모두 팽개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라는 박식에 대한 연모의 정을 끊지 못해 가슴이 메었지만 미약한 자신을 원망할 뿐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국전 실패와 사랑 실패라는 쌍끌이 절망 가운데 박식이 호소할 데는 미라뿐이었다.
“선량을 빙자한 악질들이 벌이는 굿판에 나와 미라의 사랑이 뭉개져 버렸군. 이 기막힌 현실에 무력한 내 처지가 허망하네.”
마음을 시적으로 표현해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박식씨, 미안해요. 우리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어른들의 욕심에 우리 사랑은 망가지나 봐요.”
박식의 팔을 잡은 미라의 손이 떨렸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네요.”
박식은 결심한 듯 흔들림 없이 말했다.
“박식씨, 저의 마음은 떠나지 않았어요. 어딜 가든지 행복하세요.”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아름다워질 뻔한 사랑은 이렇게 끝이 났고 인생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혀 부서지기 시작했다.
 
박식이 운명의 회오리바람에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상철은 3층 건물에 간판을 달다가 실수로 떨어져 병원에 입원하여 사경을 헤맨다는 연락이 왔다. 
“잘못되면 민정과 아들은 어떻게 되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박식은 자신이 황파에서 헤매고 있는데 상철까지 그 파도에 같이 올라탔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간판점 주인과 정민이 울고 있었다. 
상철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산소마스크를 단 채 처참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가난한 부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박식은 하나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내가 행복해지는 걸 방해하려는 것일까? 박식은 부르짖고 있었다.
상철의 사건을 몰랐다면…, 박식은 모든 것을 버리고 김삿갓처럼 전국을 떠돌며 마음의 상처를 씻어보리라 결심한 적이 있었다. 
상철의 사고로 정민이 실의에 빠진 모습을 보자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 
“만약, 만약의 경우, 상철이 회복하지 못하면 민정과 아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지?”
세상 때가 묻지 않은 박식으로서는 차마 떠날 수 없었다. 
갑자기 사고를 당하여 직장마저 그만두게 된 상철의 문제가 계속 마음에 걸려 어쩌지를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상철은 병원 치료 일주일 만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정신을 잃고 통곡하는 정민 옆에서 박식도 따라 통곡했다.
신은 왜 애석하고 참담한 사연을 만들고 있을까? 
박식은 자신보다 정민의 일이 더 난감했다. 
상철을 하늘로 보낸 후 가족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상철의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말했다.
“손자 동민은 내가 키울 테니 청춘이 만 리 같은 너는 재가를 하거라.”
슬픔이 가시지 않은 정민은 아이의 엄마로서 재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신 당분간 박식의 집에서 살기로 했다. 어려운 처지이지만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서로 위로하면서 도움을 주겠다는 박식의 제의가 받아들여졌다. 
친구를 잃은 박식과 남편을 잃은 정민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이로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기로 했다.
방인근의 『사랑』이라는 소설에 “사랑하는 사람과는 살 수 없고, 살기 싫은 사람과 살게 하는 조물주가 원망스럽다”는 구절이 있다. 
박식과 전미라는 사랑했으나 갈라섰고, 검사와 전미라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하여 발령지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식과 정민이 생각지도 않게 같이 살게 된 것이 신의 장난인가. 
 
슬프고 참담한 상황에서도 박식은 국전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지방에서 국전에 출품하는 게 대단히 어려운데, 미술 재료점에서 여러 출품 작가들을 모아 협동으로 출품하는 일을 주선해 주었다. 사전에 화가들끼리 작업에 협조하도록 도와주었다. 
박식은 열 살 선배인 김태식을 만나 조언을 받게 되었다. 김 화백은 3년 전 국전에 입선하고 지금도 국전작품을 하는 경험자라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극진히 모셨다. 
박식은 금년 30세 노총각이면서 국전을 마치고 장가를 들겠다는 야심찬 결심으로 혼자서 생계와 공부를 병행했다. 
정민은 27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를 고향의 할머니에게 맡긴 채 생계를 위해 시장통에서 옷가게 점원으로 취직했다. 미술활동을 계속하고자 밤이면 박식의 화실에 와서 도전 준비를 했다. 
서로 단점을 보완하고 색채를 도우며 두 사람은 측은지심으로 의무를 다했다. 짧은 시간인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일하거나 혼자일 때 박식은 종종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집을 펼치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젊은 시절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가슴 깊숙한 곳의 슬픔을 만져주는 약시(藥詩)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울적하면 이 시를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떠나보내는 슬픈 가슴을 쓸어주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저린 마음을 가누지 못해 방황하다가도 김소월의 시를 붙들면 차츰 편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또 시가 좋아졌다.
정민과 박식은 자연히 예술적 미학을 논하는 친구가 되고 있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은 믿음과 사랑이다.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처를 자연스럽게 치유하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불타는 정열의 폭발은 막을 수 없으나 그 열기가 식으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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